아쿠타가와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100년 전 거닐던 상하이는?

카테고리 없음|2020. 11. 15. 03:5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일본의 문호 아쿠타가와류노스케(芥川龍之介あくたがわりゅうのすけ)는 라쇼몽(羅生門らしょうもん)이란 소설로 국내에는 제법 알려져 있다.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는 중국문학 매니아 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서유기와 수호전을 탐독했고, 중국 당나라시대 전기소설(伝奇小説) 뚜즈춘촨(杜子春傳)을 일본식으로 고쳐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개작한 소설 토시슌(杜子春とししゅん)으로도 유명하다.  


토시슌(杜子春)은 영화 ‘천녀유혼’의 모티브가 된 청조의 소설가 푸송링(蒲松龄)의 요재지이(聊斋志异)와 비슷한 분위기의 판타지 소설로 어메이산(峨眉山)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도사(道士)를 만나 신선이 되는 수련 끝에 환생(還生)한다는 식의 줄거리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문호 아쿠타가와는 그러나 중국을 여행하고는 이전에 가졌던 환상을 깨게 된다. 1921년 아쿠타가와류노스케는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의 특별기사를 쓰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다. 상하이에 첫발을 디딘 그는 강남일대를 주유하고 우후(芜湖)、쥬쟝(九江)、우한(武汉)、창사(长沙)를 거쳐, 다시 베이징 톈진일대를 돌아보고 조선을 거쳐 일본에 귀국했다 주유기간중에 아쿠타가와는 신문사에 기고할 글을 쓰기위해 분주했는데 그 기록은 이후 중국유기(中国游记)란 책으로 나오게 된다.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은 당시 일본문단에 이름을 날리던 아쿠타가와가 자사에 연재물을 기고한다면서 예고문을 썼다. “구중국은 오래된 나무처럼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며 신중국은 새로 돋아난 풀과 같아 정치, 경제, 풍속, 사상 등 중국고유의 문화는 여러 분야에서 신세계와 뒤섞여 있으니 그것이 중국의 흥미로운 점이다. 상하이에 현대문단의 제 1인자인 아쿠타가와가 펜을 가지고 간다.”    

 


중국유기(中国游记)는 크게 상해유기(上海游记)와 강남유기(江南游记)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상해유기(上海游记)는 시대상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상하이에 상륙한 아쿠타가와의 첫 기억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누런 지붕의 인력거꾼들의 지나칠 정도의 호객행위는 두려움을 줄 정도였다. 인력거꾼은 사방을 향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막 상륙한 아쿠타가와 일행은 순간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인력거를 타고 약속지점까지 이동한 뒤에 인력거꾼은 요금이 성에 안찼는지 가래침을 뱉고 끊임없이 궁시렁 거렸다. 

 


서로 손님을 잡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며 몰려드는 인력거꾼들을 물리치기 위해 아쿠타가와가 처음으로 배운 중국어 구절은 ‘부야오’(不要 필요없다)였다. 그는 인력거꾼을 마주칠 때마다 마귀를 물리치는 기분으로 ‘부야오 부야오’(不要不要)를 연신 외쳐댔다, 

 


청조 치엔롱(乾隆)연간에 지어져 셴펑(咸丰) 5년에 차루(茶楼)로 개조된 상하이 위위앤(豫园) 한 가운데 후신팅(湖心亭)의 풍경은 아쿠타가와를 경악케 했다. 쉽게 말해 차를 취급하는 저급한 카페로  변한 후신팅(湖心亭)의 연못에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소변을 봤다. 

 


아쿠타가와는 세밀한 필치로 당시 청조의 상황과 유유자적하며 연못에 소변을 보는 중국인을 대비해 묘사했다.

 


 “안후이 군벌 천쑤판(陈树藩)이 반란을 일으키고 신문화 운동으로 한때 반짝했던 백화시(白话诗)는 시들하다. 물론 이런 청조의 정세가 연못에 소변을 보는 필부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연못에 오줌을 갈기는 중국인 사내의 태도나 표정은 어찌 저리 한가로울까? 흐린 날 고풍스런 정자의 병든 것 같은 녹색의 연못에 콸콸 소리와 함께 쏟아내는 오줌줄기는 나로 하여금 이 한 폭의 풍경화를 우울한 기분으로 감상하게 만든다, 이는 청조몰락의 신랄하고 가증스런 상징이다, 나는 그 사내를 물끄러미 응시했지만 이런 풍경이 너무 흔해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아쿠타카와와 후신팅에 동행한 요소키(四十起)씨는 “여기 돌판(石板)에 흐르는 것이 모두 소변이네“라면서 쓴 웃음을 짓고는 얼른 연못을 비켜지나갔다. 공기중에는 아주 역겨운 지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쿠타가와의 눈에 비친 상하이는 각종범죄와 무질서로 점철된 사악한 도시였다. 신문에는 누런 지붕의 인력거꾼이 눈 깜짝할 사이 강도로 돌변했다거나 인력거에 타고 있었던 손님의 모자를 누가 낚아채 달아났다는 보도가 빈번했다. 심지어는 여인의 귀걸이를 탐해 귀를 잘랐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돌았다. 매춘업도 성행해 차관(茶馆)주변에는 ‘예지’(野鸡)라 불리는 매춘부가 모여 있었고 이들은 일본인을 볼 때마다 간단한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편을 피우는 것도 공공연했으며 아편굴에서는 매춘부들이 손님과 누워 흐릿한 초롱불 아래에서 긴 곰방대로 아편 연기를 뿜으며 즐겼다. 

 


아쿠타가와는 반식민지 상태였던 상하이의 여러 공원도 둘러봤다, 서양식으로 조성된 불란서 공원(현재의 푸싱공원复兴公园)과 자오펑공원(兆丰公园 : 현재의 중산공원)등을 관람하고서는 일본의 공원과 비교해 볼 때 나은 점이 없다고 평가했다. 또 황포공원이 중국인들에게는 개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코단샤에서 중국유기 가운데 상해편을 분리해 출판한 ‘상해유기(上海游记)’에는 그가 조선개화당의 김옥균이 1894년에 암살당한 장소인 동아양행(東亞洋行)이란 호텔을 방문한 소회도 있다. 1886년 상하이에서 일본인이 최초로 개업한 여관인 동아양행은 김옥균의 암살로 유명세를 탔는데 권총저격사건이 연상됐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음산했다고 적었다.  

 


아쿠타가와류노스케는 1921년 난세의 중국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전통은 완전히 붕괴됐지만 새로운 문명의 싹은 움트지 않고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한 중국의 대표도시 상하이의 모습을 후세에 전한 것이다. 몇 년 전 국내에는 모녀가 상하이의 위위앤(豫园)을 관광하는 내용을 테마로 한 항공사의 TV광고가 등장한 적이 있다. 모녀가 정겨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위위앤의 풍경은 낭만적이기만 할 뿐 다른 메시지는 없어 보인다. 



반면 일본에는 아쿠타가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상하이여행이란 관광상품이 있다. 위위앤(豫园)이란 정원 하나를 보더라도 단순히 현재시점에서 고풍스럽다고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난세기 대문호는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배경지식까지 챙겨 관광을 하는 것이다,


 
상하이가 포함된 국내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는 아주 많다. 대부분 상하이의 화려한 외경에 뱃놀이, 발마사지에 특식이라고 하는 식사로 구성돼 있다. 역사의 뒤안길을 걷는 품격 있는 여행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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