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쿠리의 명인, 타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

카테고리 없음|2020. 11. 3. 21:36

카라쿠리의 명인, 타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

 

1980년대 미국을 위협했던 일본 2020년 미국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아시아 국가 중국.

 


미중 무역전쟁은 과거 1980년대 미일 무역분쟁과 비슷한 면이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이뤄졌지만 한동안 미국제조업의 근간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일본산 제품 때리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토시바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해머로 부수는 일도 있었다. 도시바가 타깃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소련에 공작기계를 몰래 팔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심해에서 각축전을 벌이던 소련의 잠수함이 갑자기 소음이 줄어 탐지가 어려워졌는데 알고 보니 도시바가 수출한 공작기계로 저소음 스크루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5G기술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해서 미국이 화웨이를 대표적 타격대상으로 삼은 것과 과거 도시바의 사례는 비슷하다. 트랜지스터 라디오 같은 전자부문뿐만 아니라 공작기계로도 정평이 나 있는 도시바의 기술과 내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 GE의 창업자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도시바의 창업주도 동양의 에디슨이라 불린다. 도시바東芝는 도쿄전기주식회사와 시바우라芝浦제작소가 합병해 탄생한 것인데 시바우라 제작소의 모태인 타나카제작소의 창업주가 바로 동양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타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다. 

타나카 히사시게의 유명은 기우에몽儀右衛門인데 흔히 카라쿠리からくり를 앞에 붙여 카라쿠리 기우에몽으로도 불린다. 카라쿠리는 움직이는 인형이나 기구로 오늘날로 보자면 일종의 로봇이다. 간단한 원리의 기계장치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17세기 서양의 괘종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태엽이나 톱니를 적용하게 되면서 제법 정교해진 인형이 에도시대에 만들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차를 나르는 인형이 대표적이다. 손님에게 차를 나르는 이 인형은 빈 찻잔을 다시 올려주면 찻잔을 운반하도록 세팅이 돼 있었다고 한다. 타나카 히사시게도 카라쿠리 제작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데 현존하는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4개의 화살을 자동으로 쏘는 카라쿠리 인형과 글자를 쓰는 카라쿠리인형이다.

1799년 현재 후쿠오카의 쿠루메에서 별갑세공사鼈甲細工師(일본에서는 견수사 견당사가 중국에서 배워운 것으로 말뜻 그대로 거북이 등껍질을 포함해 자개나 옥의 세공을 이르는 표현)의 아들로 태어난 타나카 히사시게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데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쿠루메시의 고코쿠신사五穀神社ごこくじんじゃ 축제에 독특한 카라쿠리 인형을 출품해 큰 호평을 받았고 20대에는 큐슈각지와 오사카, 교토, 에도에서 흥행에 성공한다. 

오사카 후시미쵸에 1834년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접이식의 회중촛대懐中燭台를 만들고 3년후에는 압축공기로 등유를 공급하는 등잔인 무진등無尽灯을 고안해낸다, 이후 쿄토로 거처를 옮겨 천문학도 배우고 탁월한 직인에게 수여되는 오오미다이죠近江大掾おうみだいじょう의 칭호도 얻는다. 그런가 하면 천동설을 구현하는 수미산의須弥山儀しゅみせんぎ란 기구도 만들어낸다. 또 난학자인 히로세 겐쿄廣瀨元恭가 운영하는 지슈도時習堂じしゅうどう에 입문해 다양한 서양기술도 습득한다. 1851년에는 계절에 따라 주야 시각의 길이가 달라지는 부정시법에 대응해 문자판의 간격이 전자동으로 움직이는 만년자명종을 완성해낸다.

 
타카카 히사시게는 일본의 산업혁명에도 큰 족적을 남긴다. 1853년 사가번으로 이주해 사노 츠네타미의 천거로 난학을 사랑하는 사가번의 명군 나베시마 나오마사가 운영하는 이화학연구소 세이렌카타精煉方에 합류한다. 세이렌카타에서 탄생한 일본최초의 증기기관차, 증기선의 모형도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군사용도로 사용될 반사로 설계와 대포제조에 도 공헌한다. 또 미에츠해군소에서 건조된 일본최초의 증기선 료후마루凌風丸호 프로젝트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사가번이 이끈 일본의 산업혁명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그는 1864년 고향인 구루메로 돌아가 군함구입과 총포주조와 식산흥업에 힘을 쏟는다. 이후 1873년에는 신정부의 수도인 도쿄로 이주해 75세가 되던 해인 1875년 토쿄 쿄바시구京橋区에 전신기관의 제작소인 타나카 제작소를 설립한다. 그가 82세로 타계하고 타나카 제작소는 양자인 타나카 다이키치田中大吉가 승계한 뒤 시바우라芝浦로 이전해 주식회사 시바우라 제작소로 개명하는데 이것이 도시바의 모태가 된다. 

도시바의 창업자 타나카 히사시게는 “지식은 실패에서 배운다” “일을 성취하는 데는 뜻과, 인내, 용기, 실패가 있다. 그 연후에 성취가 있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GE의 창업자 토마스 에디슨의 명언 ”나는 어떤 일도 결코 우연히 하지 않았고, 내 발명품 중 어느 것도 우연히 나온 것은 없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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