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 메이와쿠(迷惑) 질 때의 아름다움(散り際の美しさ)

카테고리 없음|2020. 11. 6. 00:18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

 

 



공중도덕과 질서에서 일본인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일본에서 사회 갈등요소가 적은 것도 바로 이 같은 메이와쿠(迷惑:민폐)에 대한 확고한 생각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러날 때 그동안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생을 마감할 때 일본인 평균의 메이와쿠 개념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넘으면서 벛꽃처럼 질 때의 아름다움(散り際の美しさ)을 남긴 CEO는 바로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다.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는 일본에서 젊은 엔지니어가 존경하는 인물 1위로 꼽힌다. 관심과 배려의 전형적인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소이치로는 은퇴한 뒤 2년 반 동안 일본 전국을 순회했다. 하루에 많게는 400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700곳 이상의 영업소나 공장을 방문하면서 종업원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한번은 소이치로가 한 시골의 한 정비사에게 악수를 청하자 맨손으로 작업하던 정비사의 손은 기름투성이였다. 정비사가 손을 씻고 오려하자 소이치로는 그를 불러세운 뒤 “괜찮아요 나는  그 기름 묻은 손이 좋아요 라면서 정비사의 기름투성이 손을 양손으로 잡은 채 ”기름묻은 손이 혼다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CEO였을 때도 “사장이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장, 부장, 호쬬(庖丁주방용칼), 맹장(盲腸)과 같다. 요컨대 직책은 명령계통을 확실히 하는 기호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혼다 소이치로는 사장으로 재직할때나 후진에게 길을 열어준다면서 퇴직(1973년 10월)했을때나 이 같은 격의 없는 행동으로 많은이의 칭송을 받았지만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가면서도 전례없는 일화를 남겼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전 “멋진 인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고객, 거래처의 여러분, 회사의 여러분 그리고 종업원 여러분 덕분입니다. 내가 죽으면 세계의 신문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는 기분을 게재했으면 한다(素晴らしい人生を送ることができたのもお客さま、お取引先の皆さん、社会の皆さん、そして従業員の皆さんのおかげである。おれが死んだら、世界中の新聞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という感謝の気持ちを掲載してほしい)는 유언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부친인 요시하라(儀平)씨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人に迷惑を掛けてはいけない)라고 교육을 받아온 혼다 소이치로는 타계하면서도 자동차 메이커를 하는 내가 장례식을 해서 대규모 교통정체를 일으키면 면목이 없다(クルマ屋のおれが葬式を出して大渋滞だいじゅうたいを起こしちゃあ申し訳ない)면서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밤을 새지도 말고 조전과 화환도 받지 말라고도 했다.



1991년 8월5일 소이치로가 타계하자 혼다측은 그의 뜻에 따라 회사장 대신 감사의 모임(お礼の会)을 연다. 평소 혼다는 퇴직이후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사의 뜻을 표해왔는데 이 방법에 따라 혼다 임직원이 각지를 순회한다는 방안도 나왔지만 논의 결과 본사와 각 사업소에서 감사의 모임을 열게 된다.

 


감사의 모임은 그가 타계하고 한달 뒤인 9월 5일부터 사흘간 교통정체를 피해기 위해 본사와 아오야마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다. 

 


감사의 모임은 “물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속임수는 안 된다” (モノは決して嘘をつかない。ごまかしはきかない)는 혼다의 모노쯔쿠리 즉 장인정신을 믿고 혼다의 제품을 산 고객들에게 감사한다는 형태로 열린다. 감사의 모임장소에는 혼다의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들과 혼다 소이치로의 사진, 그리고 “여러분덕분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皆様のおかげでいただくことができました)”라고 그가 생전에 자랑했던 훈장들을 전시했다. 

 


창업자가 타계했는데 회사장도 아닌 전례가 없는 감사의 모임을 개최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의아한 나머지 ‘정말 가도 되는지’ ‘어떤 복장으로 가야 하는지’ 등의 문의도 쇄도했다.

 


감사의 모임이 열리자 여기에는 혼다 소이치로와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혼다의 생활태도를 평소 흠모했던 사람들, 혼다 자동차의 팬들, F-1을 좋아하는 젊은이등 남녀노소와 세대를 초월한 이들이 모였다. 본사와 아오야마등 5대 사업장에서 치러진 감사의 모임에는 6만 2천명이 참석했다.

 


여기에는 신바시(新橋)에서 달려온 중화요리점 주인도 있었는데 그는 감사의 모임에 전시된 혼다의 모터사이클 수퍼 컵(Super Cup)을 보고는 “이것이 내가 옛날에 타던 것과 같은 수퍼컵이군요, 혼다에는 딱히 아는 사람이 없지만 소이치로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흔히 한국에서 음식점 배달오토바이정도로 치부되는 혼다의 수퍼 컵은 1958년부터 시작된 모델로 “음식점 배달원이 한손으로 철가방을 들고 한손으로 운전할수 있는 오토바이를 만들자는 혼다 소이치로의 구호에 따라 개발한 모델로 2013년 기준으로 전세계에 7천 3백만대가 팔렸다.。


혼다 소이치로와 친했던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いぶか まさる)는 혼다와 소니가 공동개발한 발전기를 보면서 “혼다 소이치로는 세상에 많은 것을 남겼지만 장례식도 밤샘추모도 자제시킨 행적이 그에게 가장 감탄한 큰 사건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 혼다는 시빅, 어코드 같은 글로벌 스테디 셀링 자동차로 유명하지만 모터사이클도 전통도 유구하다. 모터사이클의 엠블럼은 날개형상의 윙 마크인데 이는 전쟁중에 제공권을 빼앗긴 일본상공을 날며 폭격을 하던 미군의 B-29를 혼다 소이치로가 바라보면서 언젠가 미국의 하늘을 내가 만든 엔진으로 날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에서 유래했으며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승리의 여신 나이키가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소이치로의 희망에 따라 혼다기술연구소는 1962년에 항공기 사업진출을 선언했고 그가 타계한지 12년이 되는 해인 2003년에 혼다엔진을 탑재한 Honda Jet의 시험비행에 성공한다. 혼다 소이치로는 늘 꿈(夢ゆめ)을 강조했다. 혼다자동차의 보닛을 열면 엔진에 ‘Earth Dreams’란 문구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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