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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마레스케(乃木希典), 군신(軍神)인가 우장(愚将)인가?
노기마레스케(乃木希典) 1912년 9월 13일 메이지천황(明治天皇)의 장례식 날 노기마레스케(乃木希典)대장(大將) 부부도 따라서 목숨을 끊었다. 소설가 나쯔메소세키(夏目漱石)는 코코로(こころ)에서 “메이지의 정신은 메이지 천황과 함께 끝났다고 등장인물을 빌어 말하고 있는데, 메이지 천황에게 충성을 다했던 노기의 죽음은 메이지 시대의 종언을 확인시킨 또 다른 마침표였다. 일로(日露)전쟁 직후 메이지천황을 알현하면서 그는 “자결함으로서 폐하의 장병들에게 많은 사상자를 낸 죄를 갚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는 “괴로운 심경은 이해되지만 짐이 세상을 떠난 뒤 그리하시오”라면서 만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기마레스케는 국력이 몇 배나 강한 러시아를 패퇴시켰지만 개선장군이 아닌 패장의 모습이었다. 노기..
2020.10.31 -
망가 골든카무이(ゴールデンカムイ)가 보여주는 문화의 힘
골든카무이(ゴールデンカムイ) 문화의 힘 80년대초 패션에 앞서가던 국내 일부 여대생들은 일본의 패션잡지 논노 non-no(ノンノ)를 구해 읽었고 언론들은 왜색잡지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논노가 무슨 뜻인지 아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일본인들조차 잘 모르는 단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홋카이도의 일본소수민족 아이누어로 ‘꽃’을 의미하는 단어다. 또 이자카야에서 사케와 함께 흔히 먹은 안주 시샤모(シシャモ)역시 아이누어 susam スサㇺ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어로 순록을 토나카이(トナカイ)라고 하는데 많은 일본인들은 이를 핀란드어에서 온 것으로 착각하지만 이 역시 아이누어다. 이 같은 아이누어에 대해 일본인들이 최근 급격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다사토루..
2020.10.30 -
‘Bushido(武士道), The Soul of Japan‘을 세계에 알린 니토베이나조(新渡戸稲造)
니토베이나조(新渡戸稲造) 영어로 ‘부시도(Bushido)’라고 하면 영어권의 웬만한 식자층은 모두 이해할 정도로 세계화된 일본어다. 이 단어를 세계에 알린 이는 일본의 옛 지폐 5천엔권의 인물인 니토베이나조(新渡戸稲造)다. 1862년 모리오카(盛岡) 번사(藩士)의 셋째로 태어난 그는 13살 때 도쿄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뒤 “Boys be ambitious!”라는 명언을 남긴 윌리엄 클라크로 유명한 삿포로농학교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귀의한다. 이어 22살 때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 진학하고 이어 관비로 독일 할레대학에 유학한다. 그는 1891년 29살에 되던 해에 미국인 메리와 결혼하는 등 당시 일본인으로서는 국제화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 연구에 힘쓰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건강을 ..
2020.10.30 -
타네가시마쥬(種子島銃たねがしまじゅう)개발에 바친 효심, 와카사히메(若狭姫わかさひめ)스토리
와카사히메(若狭姫わかさひめ)스토리 일본 큐슈남단 카고시마현에 속하는 섬 타네가시마(種子島)는 일본이 H-II시리즈 로켓으로 위성을 쏘아올린 우주센터가 있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2007)의 실사배경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로켓이 발사된 이곳은 공교롭게도 일본조총의 원형인 타네가시마쥬(種子島銃たねがしまじゅう)가 개발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1543년 포르투갈인을 태운 중국 정크선이 타네가시마(種子島)에 표류했다. 이 배에 탔던 포르투갈인은 신병기 텟포(鉄砲てっぽう)를 가지고 있었다. 타네가시마의 도주(島主)인 타네가시마토키타카(種子島時堯たねがしまときたか)는 굉..
2020.10.30 -
키무라 히사오(木村 肥佐生きむらひさお) 언어 몰입의 귀재
언어 몰입(Language Immersion)의 귀재, 키무라 히사오(木村 肥佐生きむらひさお) 일본과 티벳 관계사에서 두각을 남긴 이들 가운데 이민족(異民族)의 거친 일상에 직접 들어가 몽고와 티벳의 언어와 풍습을 익혀 이를 바탕으로 정밀한 기록을 남기고 평생을 연구에 바친 키무라 히사오(木村 肥佐生)란 인물이 있다. 키무라는 외국어 학습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언어몰입(Language Immersion)의 가장 이상적인 사례다. 1922년 나가사키 사세보에서 태어난 키무라 히사오는 미션스쿨인 큐슈학원을 졸업하고 영어, 중국어를 익혔다. 외국어 공부를 선천적으로 좋아한 그는 17세에 시모노세키에서 부관연락선을 타고 조선으로 건너간 뒤 다시 중국에 입국한다. 당시 일본 청년들 사이에서는 만주를 목표로 미지..
2020.10.14 -
쑨원孫文과 우메야 쇼키치梅屋庄吉의 신해혁명 지원
일본은 중국혁명의 요람이었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은 흔히 쑨중산孫中山이라고도 하는데 중산은 그의 자字다. 중산中山은 그가 일본에 머무르면서 사용한 ‘나카야마’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쑨원이 신해혁명을 위해 주로 한 일은 해외화교자금의 조달이었다. 쑨원의 호號는 일선逸仙으로 서구권에서는 쑨이셴孫逸仙의 광동어 발음인 쑨얏센Sun Yat-Sen이라고 하며 그의 삼민주의를 ‘Dr Sun Yat-Sens’ Thought’이라고도 번역한다. 쑨원은 1894년 하와이에서 흥중회興中會를 조직하고 이듬해 광저우에서 무장봉기를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자유민권 사상가로도 활동한 미야자키 토텐宮崎滔天과 깊이 교유하며 일본 조야와 재계인맥을 넓혀간다. 쑨원은 미야자키의 소개로 겐요샤玄洋社의 ..
2020.10.13